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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만남
배우 전소민 이미지
나는 내 인생의 금메달리스트 평창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대학 졸업식 하루 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도 그랬다. 몇 년간 삶을 비관했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며 생을 포기하려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내달렸다. 운명은 그런 그에게 지금,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중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도 “애국가를 듣고 싶다”며 금메달을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던 신의현 선수. 그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됐다. 올림픽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도 금메달리스트가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황

Q. 늦었지만 평창올림픽 금메달을 축하드립니다. 그간 바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금메달을 따니까 유명세를 치르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셔서 베트남도 다녀오고, 여기저기서 찾아주셔서 촬영도 많이 했어요. 몇 군데에선 강의를 요청해서 두 번 정도 강의를 해봤는데, 그건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Q. 금메달을 땄을 당시에는 실감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실감나시죠? 금메달리스트가 된 기분은 어떠신지요?

기분은 너무 좋은데요. 지금도 여전히 제가 금메달 땄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아요. 생활에 크게 변한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직도 한편에는 바이애슬론에서 부진했던 게 남아있어요. 베이징올림픽 때 만회하려고 합니다.

Q. 금메달을 따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다’라고 많이 보도됐는데, 혹시 부인께서 서운해하지 않으시던가요? 이 자리를 빌려 부인께도 한 말씀 해주신다면?

예, 아내에게도 이야기했는데요. 저를 태어나게 해주신 것도 어머니고, 제가 사고가 나서 가망이 없었을 때 살려주신 것도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아기 엄마도 서운해하진 않았지만···, 한마디 남긴다면, 우리 아내가 없었다면 힘들었죠. 아내가 내조도 잘해주고 제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안으로 밖으로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당연히 아내가 없었으면 금메달도 없었습니다.

올림픽 영웅이 되다

Q. 무려 7종목에 출전하셨어요. 이렇게 많은 종목에서 뛰는 선수는 신의현 선수가 유일하다고 들었어요. 보통 한두 종목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종목에 출전하셨는지요?

외국 선수 한두 명 정도 저랑 비슷하게 뛰었을 거에요. 바이애슬론이나 크로스컨트리가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니까 이왕이면 우리나라 선수가 다 출전해서 국민들이 재미있게 보셨으면 했고요. 이런 종목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장애인 체육이라고 해서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Q. 노르딕스키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세계 1등이 될 수 있었을까요?

2015년 8월에 시작했으니까 3년이 조금 못됐네요. 노력도 많이 했지만 2009년에 장애인 체육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운동을 했어요. 휠체어 농구, 장애인 아이스하키, 핸드사이클 등 안 해본 종목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해온 것이 시트스키 탈 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균형 잡는 법이나 힘을 배분하는 방법들이 낯설지 않았어요. 또 순위 높은 외국 선수들을 잘 모니터하고 따라 했던 것이 주요했던 것 같아요. 그 선수들 SNS에 들어가서 “훈련을 2시간 했다”고 써놓으면 저는 3시간 하고, 그런 식으로 염탐도 했어요(웃음).

신의현 선수 이미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운동이나
공부 등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보세요.
무조건 밖으로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보면서 1년 혹은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후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Q. 힘든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고 합니다. 사고 시기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그 정도로 여전히 힘든 기억일 텐데요.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요즘 들어 많이 이야기해서 정확히 알게 됐어요. 2005년 2월에 사고가 났더라고요. 대학 졸업식 전날 제가 1.5톤 트럭을 타고 있었고, 상대 차는 20톤이 넘는 훨씬 큰 트럭이었어요. 차가 부딪혔는데 엔진이 확 다리까지 들어왔어요. 저는 의식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다리가 거의 뼈만 남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바람에 갑자기 이렇게 다리를 잃게 됐어요.

Q. 운동을 시작한 시기가 2009년이니까 사고 이후로 거의 4년 정도 칩거하셨던 거네요.

삶의 의욕이 없더라고요. 친구들 만나도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는데 전혀 위로가 안됐어요. 술도 많이 마시고 은둔 생활했죠. 그러다 2006년에 결혼을 했는데 곧바로 딸이 생겼어요. 당시엔 모든 것이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딸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완전히 낭떠러지에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영화를 한 편 봤어요. <나비효과>라는 영화인데요. 과거로 돌아가서 한 행동 때문에 미래가 안 좋아져 있고, 또 바꾸면 더 안 좋아지는 내용이에요. 그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살다 보면 몇 년 후에 나는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마침 지인의 권유로 장애인 농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Q. 운동을 시작하고 난 이후 생활의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농구팀에 가보니까 저보다 더 힘든 상태의 장애인들이 많았어요. 그들과 어울리면서 나도 장애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고요. 어차피 일은 저질러진 것이고, 인생은 흘러가고 있으니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고 인정하고 열심히 살게 됐죠.

Q.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많은 장애인분들이 있을 텐데요. 그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에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어요. 시간은 자꾸 흘러서 언젠가 사람은 죽게 되잖아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운동이나 공부 등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보세요. 무조건 밖으로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보면서 1년 혹은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진작 운동선수가 될 걸 그랬다고 하셨어요.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자기 인생에서 각자 해야 될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운동선수를 했어야 장애인이 안 될 운명이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운동선수가 될 운명이었는데 운동선수가 안돼서 이렇게 장애인이 되어서까지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건강관리

Q. 이제 건강관리 부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올림픽 끝나고 규칙적인 생활을 못했어요. 술을 몇 년간 아예 끊었는데 메달 딴 기념으로 여기저기서 술도 많이 마셨어요(웃음). 운동할 때는 매일 운동을 하니까 철저하게 금주하고요. 식사도 정해진 시간에 하고, 잠도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요. 또 4~5년 전 금연에 성공해서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많으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고, 식사량이나 수면의 질도 안 좋아지잖아요? 음주도 하게 되고요. 그만큼 스트레스 관리가 건강에 중요해요.

Q. 장애인 운동선수로서 아무래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대해서 남달리 느끼신 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다리의 절단 부위가 양쪽이 다른데요. 다리가 긴 쪽은 지원이 적고, 짧은 쪽은 조금 더 지원되거든요. 그런데 다리가 긴 쪽은 보장구가 더 길게 들어가니까 비용은 더 들거든요. 이런 의족이 상대적으로 장애인용품이다 보니 비싼 편이라는 것도 안타까워요. 휠체어도 병원용 휠체어는 싼 편이지만 몸이 더 불편하신 분들은 자기 몸에 맞춰서 휠체어를 맞춰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보완되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은 보행이 안되면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있습니다. 보행에 관한 부분은 지원을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Q. 도쿄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도 도전하신다고요.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2022년 베이징동계패럴림픽에 바이애슬론을 주종목으로 출전할 계획이고요. 평창에서는 사격에서 부진해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칼을 갈고 열심히 노력할 거에요. 또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에서 핸드사이클에도 도전하는데요. 도쿄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한 번 꽂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나비효과』 포스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의 인생을 바꾼 영화
『나비효과』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교통사고 이후, 신의현 선수는 몇 년간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지인들과도 단절된 채 3~4년간 시간이 흘렀다.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알코올에 의존했고 그 때문에 몸도 계속 쇠약해져 갔다.
그때 우연히 그를 찾아온 영화 <나비효과>. 지금 이순간,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이 미래에 나와 주변인들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된다는 내용이다. 신의현 선수는 이 영화를 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 그는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글 : 백아름 기자
사진 : 지중근(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