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골목골목까지 쓸고 나가는 한겨울, 뿌연 창에 내부 모습도 보이지 않는 식당 문을 열면 확 퍼지는 청국장 냄새에 잠깐 멈칫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망설이는 내가 얼마나 낯선 모습인지 금방 파악된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와글거리는 사람들은 청국장의 약간 고린 냄새에도 아롱곳하지 않는다. 보글보글 걸죽하게 끓인 청국장이 연실 날라오면 한 숟가락 뜨고 '커~'하고 다시 와글거리는 그들은 이 질펀한 맛과 향에 동화되어 입 속에서 고향을 찾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의 겨울은 그 맛의 그리움이 더한 시기이다. 청국장이 겨울 음식인 이유는 우선 햇콩이 나오는 시기가 10월에서 11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국장을 띄울 때는 온돌방의 따뜻한 아랫목이 필요했다. 메주콩을 10~20시간 더운 물에 불렸다가 푹 끓여 익힌 다음 보온만으로 띄운 청국장은, 이 보온을 위해 방에 불을 지폈다. 공기가 통하는 소쿠리에 삼베보를 펼치고 그 위에 짚을 살짝 깐 다음 삶은 콩을 담아 따뜻한 온돌방 한구석에 놓고 담요나 이불을 씌워 보온하면 누룩 곰팡이가 번식하여 발효 물질로 변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볏짚이다. 볏짚 속에 있는 누룩곰팡이, 일명 남두균의 활성 여부에 따라 청국장의 맛은 달라진다. 2~3일 후 발효 냄새가 나고 콩의 표면의 갈색이 진해지고 하얀 실이 생기면 발효가 잘된 것이다. 지금은 청국장 제조기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스텐레스 요기에 담아 전기에 꽂아 만드는 청국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청국장은 된장의 한 종류이기는 하지만, 여섯 달 이상 걸려야 먹을 수 있는 된장과는 달리, 2~3일 후면 금방 먹을 수 있는 'fastfood'이다. 그 간편함 덕택에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지역에 따라 퉁퉁장(충청도), 담북장(경상도), 떼장(평안도), 썩장(함경도) 등으로, 일본에서는 낫토(natto)라 불리며 널리 애용되었다. 이미 기록상 683년, 삼국사기에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으로 등장했고,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 지방에서 기마 민족들이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콩을 삶아서 말안장 밑에 넣고 다녔다는 유래가 있을 만큼, 청국장은 적어도 1400년 이상 된 전통식품이다. 냄새가 폴폴 나는 소쿠리를 열면, 허연 명주실 같은 것이 콩 주위에 엉겨 붙어 있다. 이것이 누룩곰팡이다. 단백질 분해효소나 당화효소 등의 효소가 있어 소화율이 높다는 누룩곰팡이는 혈전을 용해하는 치료제로도 유용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혈전증은 피가 모세혈관 내에서 굳어지는 증상으로, 심하면 뇌졸증이나 심근경색으로 이어진다. 또 대두가 분해되면서 그것을 먹이로 미생물이 증식하고, 각종 항암 물질, 항산화 물질, 면역 증강 물질과 같은 생리활성물질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청국장 박사로 불리는 김한복 교수(호서대 생물정보학과)는 '청국장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수백 억 마리의 청구장 발효균주, 각종 효소, 생리 활성물질을 먹는다는 것과 같다.'라고도 이야기했다. 청국장의 효능은 셀 수 없이 많다. 비타민 B1, B2, B6, B12, 칼슘, 포타슘 등 미네랄이 풍부해 비만을 막아주며 이미 다이어트 시장에서 충국장은 핵심 상품이다. 레시틴과 사포닌도 과도한 지방을 흡수하여 배출한다. 청국장에 든 제니스테인은 유방암, 결장암, 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고, 사포닌 등은 항암표과를 낸다.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전과 콜레스테롤을 녹여내고, 레시틴이 분해되어 생성되는 콜린은 치미환자에게 부족한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의 양을 늘린다. 청국장에 든 트립신 억제제와 레시틴은 췌장의 인슐린분비를 촉진시켜 당뇨병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수많은 아미노산 조각은 고혈압을 다스린다. 이밖에도 청국장은 비타민 B2로 간 기능을 개선하고, 다른 식품보다 5배 이상 많은 섬유질로 변비를 개선하며, 레시틴, 비타민E, 비타민B군으로 피부노화를 막아준다. 또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천연 칼슘제, 빈혈을 막아주는 천연 조혈제, 천연 무좀약, 천연 비아그라 등 청국장을 칭하는 훌륭한 별칭은 수없이 많다. '청국장이 장이냐, 거적문이 문이냐'는 말에서 보듯, 청국장을 귀히 여기지 않았던 시절에 비하면, 나름대로 청국장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청국장의 새로운 발견은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로부터 청국장 문화를 건네받았지만, 매끼 식탁 위에 올라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의 청국장 제작 방식 역시 전통보다는 일본 방식이 더 대중화되어 있다. 이에 전통 방식으로 청국장을 제조하는 사람들과 청국장 애찬론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청국장환, 청국장 가루를 비롯해 앞으로 나올 청국장 음료수 등 신개발품이 하나 둘 등장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음식 역시 청국장찌개 뿐만 아니라, 청국장김치, 청국장볶음밥, 빵에 발라먹는 청국장스프레드, 청국장라면, 끓이지 않는 생청국장까지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다. 더 수준 높은 건강식품으로 고르려면 국산콩으로 만든 제품이 좋다. 유통되는 콩의 90% 이상이 수입콩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국산콩 구하기가 어려운 요즘이지만, 우리 콩은 수입콩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많고 맛과 발효 비율이 월등하다. 아무튼 웰빙 바람을 타고 '우리 것' 청국장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샘솟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건강의 보고'청국장 한 그릇을 놓고 그 효능에 넙죽 인사는 못 할망정, 코를 잡고 찡그리며 외면하는 모습은 줄어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