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트래블

단풍처럼 사랑이 물들어 올까?

가을이면 떠오르는 곳으로 간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있는 곳, 과천으로. 그곳에 가면 사랑에 서서히 물들어 버리게 될 거란 기대를 품게 된다. 동명의 영화에 나온 그 대사처럼. 서서히 물들어 오는 저 단풍처럼.

글. 정태겸

우선 과천 나들이를 위해서 마스크와 2m 거리 수칙은 필수이다. 당연 발열 체크는 덤. 준비를 마치고 순서대로 갈 곳을 정하면, 제일 먼저 갈 곳은 미술관이다. 영화의 제목이 그러니까. 과천의 미술관은 곧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그중에서도 과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얼굴 같은 곳이다. 나이 지긋한 분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을 이야기하면 과천관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정도로 상징적이다.

청계산을 등지고 한국의 성곽과 봉화대의 양식을 차용한 건축디자인을 갖춰 세련미가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자연의 경관을 살리고 그 안에 현대미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온갖 작품을 모아두었으니 데이트 코스로는 1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30년 넘도록 가꿔온 야외 조각공원은 제법 팔 벌린 나무가 울창하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나있어 연인이 발맞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걷고 사진을 찍고, 드높은 가을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그 사람과 공원의 정경과 가을하늘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다.

미술관을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이곳의 시그너처 같은 작품이다. 8명의 작가가 다양한 소재로 놀이하듯 빚어낸 작품을 전시한 기획전 <놀이하는 사물>이나 한국근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에 맞춰 3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시대를 보는 눈 : 한국근현대미술>은 꼭 보고 올 것. 지금 누릴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알짜배기 전시다.

미술관 옆 그곳, 동물원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동물원 가자”라는 말이 “과천 서울대공원 가자”는 의미였던 시절. 그때는 유치원 소풍이나 초등학교 소풍이면 으레 서울대공원을 가던 때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픈 기억이 서려있다. 한국 최초의 동·식물원은 1909년 11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고 문정전 같은 전각을 헐어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것이 1984년이 되어서야 창경궁 복원사업에 의해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과천으로 이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의 서울대공원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은 바야흐로 동물원 나들이를 즐기기에 제격인 계절이다. 보기에도 그럴싸한 차량을 타고 마치 정글을 탐험하듯 사파리를 즐기는 다른 동물원이 워낙 인기가 높지만, 윤리적인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곳은 서울대공원이다.

눈앞에서 곰이 재주를 부리고 사자가 포효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어 관람객의 만족도가 높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쇼를 연출하기 위해 동물들은 훈련 동안 강제로 적은 먹이를 먹으며 단식을 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고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인간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동물에게는 스트레스다.

동물쇼도 없고, 동물 먹이주기 체험도 없는 서울대공원이 중요한 건 오히려 그래서다. 갇힌 채로 살아야 하는 동물을 위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한 선택을 한 곳.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 동물원이라는 아이러니. 그렇지만 그래서 더 서울동물원을 가야 한다.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고 인정해야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

동물원 맞은편 그곳, 과학관

과천에 따라붙은 또 다른 수식어는 ‘과학’이다.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됐지만, 한때는 과학과 관련한 교육을 생각하면 1번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는 국립과천과학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위치는 서울대공원의 동물원 맞은편이다. 정확히는 과천저수지 건너편. 지도를 보면 이 둘은 거의 정확히 서로 마주하고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은 ‘1퍼센트의 호기심이 100퍼센트의 상상력이 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맞는 말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상상력이 일기 마련이니까. 호기심을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과학에 대한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과학이라는 영역이 지나치게 많은 분야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는 그야말로 과학의 천국이다. 항공 우주, 천문, 해양, 자연사, 지질, 인체, 로봇 등 거의 모든 과학의 영역을 이곳에 함축시켜 놓았다.

심지어 전 세계를 통틀어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뛰어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유념할 것은 하루에 다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를 잘 판단해서 여러 번 방문하는 게 현명하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부모에게는 쉽지 않은 관람이 될 것이다. 상설전시관 1층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는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쏘다닐 테니. 하필 이곳의 90퍼센트가 체험형 전시다. 아마도 “이제 가자”라는 말을 연신하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과학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체감하기 좋다. 혹 연인이 과학과는 담을 쌓고 있다면, 좋은 기회다. 아름다운 이 계절, 데이트를 핑계로 과학 공부를 시켜보자. 분명히 즐거운 과학 공부 겸 데이트 코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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