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아들 떠나보낸 아픔,
봉사와 문화로 치유하는 배우 이광기
“정신건강 되찾고 고목에
꽃피우듯 다시 살아갑니다”

배우 이광기에게는 아픔이 있다. 2009년 11월 둘째 아들 석규(당시 7세)를 신종플루로 떠나보낸 것.
당시 상황이 보도되면서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들과의 이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 후 그는 고목 나무처럼 서서히 말라갔다.
이광기는 아픈 가족사를 언급하며 “우리 가족이 다 시들어가는데 다시 꽃피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스로 꽃이었다는 사실을.
시들고 초라해지더라도 씨앗을 남기고 다시 피는 꽃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아들 석규가 남긴 소중한 유산 덕에 덤으로 선물 같은 삶을 산다고 말하는 이광기를 만났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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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배우 이광기
육체적 건강에서 정신적 건강으로

10년째 자선 경매를 진행하는 이광기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기부에도 동참했다. ‘이광기의 라이브 경매쇼’에서 나온 수익금에 시청자 한 명당 1000원을 더해 기부한 것이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는 이광기의 마음은 편치 않다. 비슷한 아픔을 겪었기에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확산 방지와 치료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19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심리 치료나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이런 전염병은 너무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하고, 면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상당하거든요.”

경험담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조언이다. 그는 사망자 가족에 대한 배려와 위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날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았어요. 병원에 가니 신종플루라고 해서 ‘치료하면 낫겠지’ 했는데,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까지 눈앞에서 보게 되니….”

그 이후로 한동안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또래 남자애만 봐도 심장이 떨리고 그리운 감정이 북받쳤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수도 없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 이광기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며 건강에 대한 생각도 백팔십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육체적 건강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정신적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몸이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힘들고 피폐하면 금방 망가지거든요. 그래서 마음 건강에 좀 더 신경 쓰고 있어요.”

이광기는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생각을 하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마음을 다시 꽃피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배우 이광기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말하죠.
바꿔 말하면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할 수있답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주세요.”

나눔의 기쁨으로 꽃피우다

그를 고통 속에서 구해낸 건 봉사였다. 이듬해 북중미의 빈국 아이티에 대지진이 벌어졌고, 석규의 보험금을 아이티 지진 피해에 전액 기부하며 시작된 인연이었다.

“지진 피해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방문했는데, 부모·형제를 잃은 석규 또래 아이들을 보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에 위안도 되더군요.”

아이티 아이들에게, 하늘나라로 간 아들이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너희 부모님도 분명히 너희를 지켜주고 도와줄 테니 힘을 내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고통 속에서 찾은 치유와 힐링의 순간이었다.

아이티 대지진을 계기로 10년 동안 해마다 자선 경매를 이어왔다. 그렇게 모은 후원금으로 아이티에 마일론-케빈 학교(Maillon-Kevin School)도 세웠다. 석규의 영어 이름인 케빈(Kevin)을 딴 이름이다. 마일론-케빈 학교에서는 60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며 배움의 꽃을 피우고 있다. 모금 기부를 위해 나서는 이광기의 시선은 기존 방식과 조금 다르다.

“기부를 위해 아이들의 불행하고 힘든 모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의 기쁨과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어필된다고 생각해요. ‘불쌍해서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 ‘저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기부자도 더 행복하거든요.”

실제로 이광기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카메라를 접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며 행복해했고, 이광기 또한 그 모습에 뿌듯하고 기뻤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며 벅찬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그 감정으로 지금까지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못 다 핀 꽃봉오리가 만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는 것, 그것이 이광기의 나눔 철학이다.

문화에서 발견한 치유의 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이광기의 삶을 일으켜 세운 또 다른 힘이다. 그는 2000년 초반 전시장에서 그림 하나를 구입하며 미술품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뒤로 전시회 관람이 취미이자 여가 활동이 되었고,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둘씩 사 모으며 그림에 대한 매력에 푹 빠졌다. 작가들 사이에서 소문난 문화 예술 애호가다. 석규 군을 잃고 힘들 때도 미술 작품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

“너무 힘들 때 작가분께 ‘나만의 십자가’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했어요. 나무로 만든 것인데, 십자가 안에 계단과 빈 의자가 있더라고요. 내가 앉아 쉴 수 있는 의자 같아서 그걸 받아들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던 그는 작품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작품 소개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치유의 힘과 기쁨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전시 기획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의 인증샷 장소로 유명한 ‘피스 핀(Peace Pin)’도 그의 작품이다. 핀(압정) 모양의 대형 풍선 모형을 마치 좌표를 표시하듯 땅에 박은 것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핀은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세계적 명소로 떠올랐다.

문화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이 되었다. 그의 전시 기획과 문화 참여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활동이다. 신진 작가를 홍보할 뿐 아니라 전시‧경매 수익금을 기부하며 나눔에도 기여한다. 이를 위해 2018년 9월 경기도 파주시 출판도시 안에 1000㎡(300평) 규모의 ‘스튜디오 끼’를 오픈했다. 유튜브 ‘광끼채널’과 ‘끼마켓’도 운영하며 신종 플랫폼을 개척 중이다.

배우 이광기
배우 이광기에서 종합 아티스트 이광기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그는 고백한다.

“예술 작품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대본 읽는 눈이 깊어졌다는 게 느껴져요. 텍스트 너머에 작가의 의도, 시대적 배경까지 눈에 들어오거든요.”

배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종합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예술은 모두 하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이 범주 안에서 내가 다양한 길을 만들어 놀고 있으면 결국 다 연결되는 거죠. 많은 예술가와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연기에 대한 스펙트럼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로 기쁨을 나누고 소통하는 종합 아티스트 이광기. 아픔 속에서 만개한 꽃이라 더 소중하고 애틋하다.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 예술의 필연이라고 하지만, 더 큰 아픔이 없기를 바라본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이광기의 예술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