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트래블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을까
시리도록 푸른 봄날을 품은 고창

고창은 봄엔 온갖 꽃이 만발해서 화창(花敞), 여름엔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우창(雨敞), 가을엔 하늘이
높고 푸르다 해서 고창(高敞),
그리고 겨울엔 눈이
많이 와서 설창(雪敞)으로 불린다.
그만큼 사계절
천하 경관을 자랑한다. 그런데 거기에 더할 비경이
있다. 바로 짙은 초록을 품은 5월의 고창이다.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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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창군

보리밭 가운데엔 봄기운을 뿜어내는 유채꽃밭이 터진 노른자처럼 펼쳐져 있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청보리밭
선운사 대웅보전 뒤편 동백숲은 동백꽃이 그득하다.

100만 m² 구릉 위에 짙은 초록의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 푸르름이다. 상상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상쾌함이랄까. 바로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이 조심스럽다. 이럴 때, 자연은 답이 되어준다. 아쉽게 지나가는 아름다운 계절과 안전하게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사진을 보는 것으로 혹은 나중을 기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되어주니까. 시리도록 푸른 5월을 품은 고창처럼 말이다. 보리밭을 걸어보자. 이삭이 막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보리밭은 푸른 기운을 한껏 뿜어낸다. 밭 사이로 곱게 난 황톳길을 따라 걷는데, 시원한 봄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가슴이 뻥 뚫린다. 고창 보리밭은 역사가 깊다. 과거부터 ‘보리마을’로 불릴 정도로 보리농사가 잘된 지역이다. 고창의 옛 지명인 모양현(牟陽縣)의 ‘모’는 보리를, ‘양’은 태양을 뜻한다. 풀어내면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던 시절부터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도 이곳 보리밭에서 촬영되었다. 도깨비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던, 시공간을 초월한 그 신비한 메밀꽃밭이 바로 이곳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이었다.

청보리밭의 이른 아침 풍경
5월에 만개하는 대산면 중산리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183호로 지정돼 있다.
성곽 따라, 붉은 철쭉 따라

학원농장은 봄에는 청보리, 여름에는 해바라기 그리고 가을에는 하얀 메밀로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도깨비>에 등장한 메밀꽃밭 장면은 모두 메밀꽃이 피는 9월에 몰아서 촬영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임당>, <육룡이 나르샤> 등 수많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청보리밭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보리밭 사이에는 작은 숲과 저수지 등을 끼고 모든 구간이 포장된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쉽게 다닐 수 있으니 참고하자. 이번엔 고창읍성이다. 단종 원년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진 않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이 잘 남아 있다. 전국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읍성으로 유명하다. 축성 당시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원, 내아 등 14동만 복원됐다. 특히 성안에 밀식돼 있는 소나무 고목 3300여 그루와 층층나무, 단풍나무 등의 원림(原林)의 매력이 돋보인다. 힐링하기 딱 좋다. 또 성 밖에는 성곽을 따라 심은 붉은 철쭉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성곽을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려 산책하기 그만이다.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는 야경도 근사해서 어느 때 둘러봐도 좋다.

고창읍성 성곽을 따라 붉은 철쭉이 화려하게 이어진다.
4~5월에 만개하는 고창의 동백꽃
세계 최고 밀집도 자랑하는 고인돌까지

원시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인돌 유적지도 꼭 둘러봐야 한다. 고창은 세계적인 고인돌 산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무엇보다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으로 1.8km 구간에 무려 447기가 있다. 또 무게만 300톤이나 되는 세계 최대 고인돌도 고창에 있다. 고인돌 여행은 고인돌 박물관에서 시작된다. 박물관에서 관람 열차를 타면 고창읍 죽림리부터 아산면 상갑리, 운곡리 고인돌과 도산리 일대까지 전부 관람이 가능하다. 고인돌을 봤다면 근처 운곡 람사르 습지로 가자. 고인돌 박물관에 주차하고 걸어가면 된다. 고창군은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특히 운곡 람사르 습지는 생태 자원의 보고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저층 산간 습지로 총 864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다. 습지는 좁은 덱의 탐방로를 따라 운곡 저수지와 생태 공원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습지 트레킹이 이색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의 고인돌
고창은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그야말로 몸보신,
꼭 먹어야 하는 고창의 밥상

봄 조개의 여왕, 백합 고창 특산물 중 하나인 백합은 봄에 가장 맛있다. 타우린과 아미노산 등 몸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해 건강을 챙기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백합회부터 백합구이, 백합탕에 죽까지 맛보자. 산지 백합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이 일품이다.

원조의 품격, 풍천 장어 서해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고창은 풍천 장어의 원조 고장이다. 양질의 기름과 단백질로 꽉 찬 장어 한 점은 귀한 보양식이다. 고창 풍천 장어는 바다 부근의 염도가 높아 고기가 오염되지 않고 육질이 뛰어나며 맛이 담백해 풍천 장어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육질이 남다른, 바지락 고창 갯벌은 세계 5대 갯벌로 인정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할 예정이다. 고창의 갯벌에서 채취한 바지락은 쫄깃한 육질을 자랑한다. 천연의 짭조름한 바지락 살이 듬뿍 올라간 솥밥에 잘 구운 고창 김을 올려 먹으면 잃었던 미각도 돌아오는 마법이 발휘된다.

고창 천렵의 맛, 매운탕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일명 ‘풍천’이라 불리는 인천강은 예로부터 영양가 높은 물고기가 많았다. 인천강 인근 식당들은 천렵한 물고기를 강둑에서 굽거나 매운탕으로 끓여 팔았다. 특히 인천강의 보리새우로 끓여낸 민물새우탕은 시원하기가 천하일미다.

만병통치 효능, 복분자 선운사 맑은 기운과 청정 황토, 서해안 해풍 등 최고의 환경에서 자라는 고창 복분자의 오묘한 맛과 향은 복분자 종주 지역으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 등에 탁월한 폴리페놀 성분을 타 지역 복분자에 비해 2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설탕도 무릎 꿇은 당도, 수박 고창 수박은 당도가 어찌나 높은지, 당도 하나로 전국의 수박을 고창 수박으로 탈바꿈시켰을 정도다. 질 좋은 황토와 미네랄이 풍부한 서해안 해풍을 맞고 자라 단맛이 뛰어난 자타 공인 최고의 수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