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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OF SENIOR

#실버스타

인스타그래머 이찬재 씨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_ 그림 이야기

표현해야 한다. 고맙다고,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마음에만 담아둔 말은 공중으로 흩어져 상대에게 닿기 어려우니까. 이찬재 씨는 지구 반대편 손자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붓을 들었다. SNS가 있으니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듯, 할아버지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 팔로워들이 할아버지의 그림과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글. 정은주 기자 사진. 이찬재 씨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손자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그림

이토록 사랑스러운 그림을 본 적이 있나 싶다. 비단 부드러운 선, 따뜻한 색감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손자들을 향한 애틋함, 그리움, 가족의 화목함이 이찬재 씨의 그림에는 가득하다. 그러니 소박한 수채화 한 점 한 점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그의 그림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과 존경을 보내는 이유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평범한 아빠였고 할아버지였다. 젊은 시절 취미삼아 그림을 그린 적은 있어도 그건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된 데는 손자들에 대한 사랑이 결정적이었다. 각각 브라질, 한국, 뉴욕에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 무려 35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부터 ‘나의 손자들을 위한 그림(Drawings for my grandchildren)’이다.

 지구 반대편의 가족이 함께 채우는 SNS

휴대폰은 오직 통화 용도로만 사용하고, 이메일 한 번 쓴 적 없던 할아버지가 능숙하게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게 되기까지는 온 가족의 도움이 있었다. 페이스북 아트 디렉터인 큰 아들이 2주 동안 게시물 올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작은 휴대폰 화면 타이핑을 어려워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할머니가 글쓰기를 자청했다. 또 할머니가 한글로 쓴 글은 아들이 영어로, 딸이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다시 올리는 방식. 그렇게 할아버지의 그림 덕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지구 반대편의 가족들이 대화를 나눈다. 전 세계 팔로워들로부터 메시지도 많이 날아드는데, 글과 그림을 좋아해주는 이들을 보면 너무나 기쁘다고. 큰아들이 처음 그림그리기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절대 안 그린다’며 몇 번을 거절했던 그가 지금은 누구보다 이 일상을 사랑하게 됐다.

 할아버지가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내키는 대로 그리다 보니 자신만의 방법과 스타일이 생겼다. 연필, 펜, 크레파스 같은 것들도 사용하지만 주된 것은 수채화. 하루에 한 장 씩, 지금까지 700여 점을 그렸다. 그림의 소재는 손자들이 좋아하는 동물과 재미있게 보던 책,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아내가 좋아하는 식물 같은 것들. 이찬재 씨만의 사랑 표현 방식이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걸까. 그의 그림은 BBC 등 해외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갈라파고스 원정 탐험에 초대를 받고, 지난 8월에는 한국에서 전시도 열었으니 일흔을 훌쩍 넘긴 그에게 흥미진진한 인생2막이 열린 셈이다. 이찬재 씨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건강을 챙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우리 모두의 빼곡한 낮과 밤이 따뜻하게 채워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