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밸런스

건강iN 매거진 5월호hi.nhis.or.kr
나이 지긋한 분들 중에 혈압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고혈압은 우리에게 매우 흔한 질병이 되었다. 그런데 흔하다고 얕잡아본다면 곤란하다. ‘혈압’이란 우리 몸의 혈액을 순환시키는 힘인 만큼 일상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혈압이 병이냐고?

고혈압은 말 그대로 ‘혈압이 높다’는 뜻이고 저혈압은 ‘혈압이 낮다’는 말이다. 뇌졸중이니 폐렴이니 하는 질병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들리는 데다 고혈압인 사람들이 워낙 많은 탓에 ‘고혈압이 무슨 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혈압이 중대한 질병인 것은 분명하다. 1930년대만 해도 의료 전문가들은 고혈압이 생리적인 현상이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혈압이 높은 상태가 사람의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음으로 제시한 것은 1928년 미국 보험협회의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이 보고서에는 과학적인 원인 규명은 없었지만 ‘혈압이 높은 사람들이 사망률이 높다’는 통계를 담고 있었다.
1940년대 말 미국 매사추세츠주 프래밍햄시에서 실시된 대규모 역학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연구로 인해서 고혈압이 여러 합병증을 일으키는 선행요인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미군병원에서는 전역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고혈압 치료를 안 받은 70명 가운데 27명이 1년 안에 뇌졸중에 걸린 반면, 치료 받은 70명 중에선 단 한 명만이 1년 안에 뇌졸중에 걸렸다. 이 같은 결과로 고혈압이 심각한 질병이라는 명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남성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6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Korean Medical Insurance Corporation study, KMIC)에 따르면, 혈압 140/90mmHg 이상인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130/85mmHg 미만인 사람들에 비해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이 2.6배 높았으며, 고혈압은 뇌졸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은 꾸준히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데다 자칫 치명적인 합병증을 초래하기도 하는 질환인 반면, 저혈압은 오래 지속되는 사람보다는 순간적인 상황에 의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질병보다는 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30세 이상의 30%, 60세 이상의 50%가 고혈압

2015년 건강검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고혈압으로 판정 받은 사람의 수는 15만4천 명으로 40대(55.3%)에서 판정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는 2010년에 비해 3.7%p 증가한 수치다.
고혈압은 다가올 ‘100세 시대’에 삶의 질을 위협하는 만성질환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질환으로 꼽힌다. 2015년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보면 한국인의 만성질환 가운데 고혈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3명, 60세가 넘으면 10명 중 5명이 고혈압이다. 65세가 되면 남자의 경우 10명 중 6명, 여자는 10명 중 7명이 고혈압 환자로 분류될 만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혈압으로 인해 애를 먹고 있다.고혈압은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일상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만 건강검진을 통해서는 쉽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경우가 많고 혈압 관리를 등한시해 심각한 합병증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4년 고혈압·당뇨병의 치료·관리 등에 관한 적정성 평가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의 83% 가량이 365일 중 292일 이상 혈압강하제를 처방받아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30~35세 미만’의 젊은 연령층은 처방지속군의 비율이 63.0%에 그쳐 고혈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통계 수치들은 혈압을 더 이상 ‘노인의 문제’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 몸의 피를 돌게 하는 힘, 즉 혈압은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자 건강과 질병을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인 만큼 조화로운 밸런스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나이와 성별 등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