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주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띠게 하는 <건강보험> 독자들의 '소확행'을 소개합니다.
오디오북 듣기
텃밭이 생겼어요
이해영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뒤 뜻밖의 텃밭이 생겼다. 집 바로 옆에 풀이 웃자란 공터가 있었는데, 듣자 하니 땅 주인이 인근 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방치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 달 전, 그 땅 주인이 우리 집에 찾아와 그곳에 농사를 지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그것이 텃밭의 시작이다.
땅 주인은 방치된 땅을 무상 임대를 통해 관리하고 싶어 했다. 공터가 꽤 넓은 데다 농사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망설였다. 그러다 이웃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공동 경작하고 싶다는 신청자가 속출하는 게 아닌가. 결국 얼떨결에 이웃들과 함께 농사를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은 먼저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고 퇴비를 줘서 공터를 텃밭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공간을 각 5평 정도로 나누어 일구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잠깐. 시장에서 상추, 대파, 감자, 들깨 등의 모종이나 씨앗을 구입해 심었더니 어느새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났고, 싹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제까지 없던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하룻밤 사이에 훌쩍 컸다. 신기한 마음에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추가로 심고 나니 더 자주 텃밭을 기웃거리게 됐다. 밭을 나눠 경작하는 이웃이 고맙다며 고구마 순을 나눠줘서 고구마도 두 두렁 추가! 밭 가장자리에 몇 포기 심은 옥수수도 열심히 자라고 있다.
매번 마트에서 사다 먹던 채소를 내 손으로 기르는 즐거움은 의외로 컸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처음 상추를 뜯은 날, 수확한 감자에 들깻잎과 양파를 썰어 넣고 부침개 만든 날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기대만큼 자라주지 않는 채소도 있다. 뭐가 문제였는지 공부해가며 조금씩 농사의 묘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텃밭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작물을 살펴보고 흙을 만지고 있다 보면 피로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일이 새롭고 설렌다. 요즘은 심고 싶은 작물이 많아져서 고민이다. 내년엔 애호박과 오이에도 도전해봐야지!
나의 주방 일지
홍미경
장신구 하나 없이 최대한으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300인분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비록 한 달에 한두 번이라지만, 집에서 살림만 하던 나한테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런 큰일을 벌인 지도 어느새 1년가량 되었다.
9시까지 출근이다. 주름진 흰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품이 큰 방수 앞치마를 입는다. 냉장고에는 오늘의 메뉴가 붙어 있다. 1. 나물비빔밥&고추장소스 2. 팽이두부된장국 3. 비건떡갈비볶음 4. 시금치나물 5. 배추김치 6. 매실차
시금치 다섯 상자가 와 있다. 시금치를 적당히 덜어내 가지런히 도마에 올려놓고 뿌리 부분을 칼로 잘라낸 다음 2~3등분해서 소쿠리에 담는다. 다듬은 시금치가 태산같이 쌓여간다. 조리사가 대형 솥의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다. 찬물에 세 번 헹구어 소쿠리에 밭쳐놓으니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물기를 뺀 후 조리사가 소금, 간장으로 간을 하고 파, 마늘, 깨, 참기름을 넣고 맛있게 무친다. 이쪽에서 시금치나물을 완성해가는 동안, 주방장은 대형 솥에 된장국을 끓이고 대형 팬으로 떡갈비를 만든다.
어느새 식판 앞쪽에 나물비빔밥과 팽이두부된장국이 담겨 있다. 뒤엔 떡갈비, 시금치나물, 김치, 매실차 캔이 나란히 놓였다. 완성된 근사한 밥상을 보니 문득 어떤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 위의 백조가 우아해 보여도 실제로는 물 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배식이 끝났다. 설거지에 여념 없던 일손을 놓고, 우리도 점심시간을 갖는다. 백조의 남모를 수고와 같은 노동 후 점심은 꿀맛이다.
숨 가쁘게 일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은 한산하다. 장애물 달리기에서 허들을 무사히 통과해 결승선에 도달한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보람과 재미, 이 둘과 함께하는 귀갓길이다.
'우리들의 소확행'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독자 여러분을 위한 지면입니다.
여러분의 작지만 소중한 행복 이야기를 <건강보험>에 보내주세요.
채택된 분에게는 소정의 모바일 상품권을 드립니다.
원고 분량 원고지 4매 이내(A4 반 장 이내, 10포인트 기준)
원고 마감 상시
응모 방법 우편 또는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우편 주소 26464 강원도 원주시 건강로 32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 정기간행물 담당자 앞
*이름과 전화번호를 꼭 적어주세요.
이메일 nhiswebz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