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많은 시간을 누구와 함께 보낼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외로움은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노년기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미리 대비하는 것도 은퇴 준비 중 하나다.
글 손성동(한국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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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외로움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도 그 시발점은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만든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영국의 외로움부는 고독사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외로움과 고립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나의 부처를 만들어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갈 텐데도 영국이 그렇게 한 것은 외로움의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영국의 움직임은 2021년 고독부를 만든 일본으로 이어졌다. 이런 열기는 작년 미국의 공중보건정책을 총괄하는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이 “외로움은 이제 진지하게 다뤄야 할 공중보건의 중대도전”이라 밝히면서 더욱 달아올랐다. 이제 외로움을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취급하는 비만이나 약물중독처럼 다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외로움
외로움은 개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외로움은 조기사망 가능성을 26~29% 높이고, 심장병 위험과 뇌졸중 위험은 각각 29%와 32% 높아진다고 한다.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 들거나 그런 느낌을 받는 상태를 말한다. 세상에 사람이 넘쳐나는데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적막하고 스산한 상태를 상상해보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마음속엔 먹구름이 가득 찰 것이다. 먹구름이 끼면 살아갈 맛이 뚝 떨어진다.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외로움은 생존 또는 자존감에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에서 최상급의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니 외로움에 직면한 사람의 건강이 좋을 리가 없다.
특히 노년기는 외로움에 더욱 취약하다. 사회생활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분리되고, 친구 및 가족과의 이별이 익숙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외로움의 습격』을 출간한 정치철학자 김만권 교수는 사람들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원인으로 가난, 디지털 기술, 데이터가 지닌 편향성, 능력주의 등을 지적한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이런 지적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면 관계의 단절이 외로움의 핵심 아닐까.
관계의 단절은 곧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퇴직 등에 따른 사회활동의 축소는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친구 및 가족의 사망은 인간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눌 대상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굉장히 큰 상실감에 빠지며 외로움의 습격을 받게 된다.
15분의 효과
노년기에 외로움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소통의 통로인 사회적·인간적 관계망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육체를 탓하며 집콕을 고집하다간 외로움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외로움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지름길은 몸부림치는 것이다. 사회적·인간적 관계망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퇴직 등으로 단절된 사회적 관계망은 가까운 지인들과의 소모임이나 지역사회의 동호회 모임 등으로 보완하면 된다. 나이 들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인간적 관계망의 유지다.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의 사망은 내가 어찌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길수록 남은 사람들과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의 단장인 비베크 머시가 제안한 두 가지 내용은 가슴 깊이 새기고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적어도 하루 15분씩은 보내기’이다. 하루 15분만으로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은 비록 하루 15분에 불과할지라도 그 전의 설렘과 그 후의 여운을 생각하면 15분이 15시간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둘째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주의를 흩트리는 기기를 멀리하기’이다. 다른 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시선이 TV나 휴대폰에 가 있다면 그 사람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과연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까? 이런 상태의 소통이라면 오래가기 쉽지 않고, 진정한 관계로 발전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야기할 때만이라도 상대방과 시선을 마주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열정을 쏟을 거리를 찾자
노년기에 외로움에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원인으로 성장의 단절을 들 수 있다. 성장의 단절은 곧 열정의 소멸이자 마음의 죽음을 의미한다. 노년기에도 비록 육체적 성장은 불가능하지만 어떤 일에 열정을 쏟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열정만 있다면 노년기에 혼자 있더라도 전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기다려질지 모른다.
사회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의 단절은 나의 관여가 50% 이하라면 성장의 단절은 나의 관여도가 100%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즉 사회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의 단절은 내가 노력하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성장의 단절은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썩은 나뭇가지에 꽃이 피는 것은 영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여 위로 올리고자 하는 뿌리의 열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노화를 피할 수 없는 노년기라도 마음이 살아 있다면 외로움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철옹성을 쌓아 올릴 수 있다. 열정을 쏟을 거리를 찾는 일이야말로 외로움의 포승줄을 푸는 단서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