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 없다. 정우성.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1990년대 원조 꽃미남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데뷔 후 30년이 지난 2024년에도
변함없는 자리에서 팬들을 만나고 있다. 20대의 청춘스타는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며
꾸준히 노력했고, 어느덧 50대의 국민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 '첫만'배우: 생애 처음 '천만배우'라는 의미
글 남혜연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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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정우성을 향해 인생 제2막을 활짝 열었다고 표현하지만, 늘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기에 정우성의 연기인생은 언제나 봄이요, 멈추지 않는 현재 진행형인 듯싶다. 최근에는 영화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을 통해 ‘천만배우’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었으며, 안방극장에선 잔잔한 멜로로 또 한 번 여심을 홀렸다. 요즘의 정우성의 속내는 어떨까. 역시나 그답게 솔직했고, 유쾌한 답으로 가득했다.
천만배우 정우성, 시대가 선택해준 것
<서울의 봄>은 그야말로 신드롬을 낳았다. 그리고 정우성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천만배우’라는 타이틀을 쥐여준 고마운 작품이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이 발생한 날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현실감 있게 표현, 젊은 세대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극 중 정우성의 강직한 면모에 ‘황정민이 맡은 전두광이 아닌 정우성의 이태신이 이기길 바랐다’는 말도 인터넷상에선 화제였다. 말도 안 되는 그 참혹한 현실 속 정우성이 맡았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연신 이어졌던 것.
정우성이라 가능했던 이태신, 여기에 천만 관객이라는 겹경사까지. 그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 듯했다.
“<서울의 봄>을 보신 분들께서 영화 속 이태신의 선택을 응원하고 연민하고 그걸 멋있다고도 봐주시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은 몰랐어요. 시대가 선택을 해준 거라는 생각이죠. 마지막 감사 무대인사를 돌면서 웃음을 드리려 농담으로 ‘새내기 천만배우입니다’ 하며 인사를 드렸어요. 근데 제가 천만을 한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천만을 했어요. 정말 감사하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목적은 극장에서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무대인사는 제게 당연한 일이고, 여러 상황이 허락된 것에 감사할 뿐이에요.”
진심이었다. 그래서 정우성은 232회의 무대인사를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 기록은 대한민국 배우 중 역대 최다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 애정이 깊었고, 날이 갈수록 영화에 대한 의미가 널리 알려진 만큼 몸살감기에도 굴하지 않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관객과 직접 만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생겼다. 바로 젊은 관객(?)에게 청혼을 받은 일이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결혼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오더라고요. 심지어 2007년생 팬이 저한테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결혼이란 단어가 갖는 관념이 지금은 바뀌었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말했어요.(웃음)”
그는 <서울의 봄> 이야기를 하면서 연신 웃었다. 모든 작품에 개인적인 의미와 바람을 얹을 수는 있어도, 결과를 목표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천만이라는 숫자를 ‘큰 행운’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그에게 50대 그리고 30년을 넘긴 활동에 대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치지 않고 잘 버텼다 싶어요. 일희일비하지 않았고, 결국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경쟁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 나와의 경쟁이잖아요. 나한테 지치지 않았고, 사회 혹은 팬 어떤 대상을 놓고 버텼다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에 대한 버팀을 잘해냈다고 느껴요.”
멜로장인 정우성이 11년 만에 만난 멜로
최근 종영한 정우성 주연의 지니TV ENA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정우성 분)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신현빈 분)의 사랑 이야기로 짙은 감성의 멜로 드라마다. 1995년 방영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각본 기타카와 에리코, 제작 TBS 텔레비전)을 원작으로 했다. 정우성이 13년 전 판권을 구매해 주연 배우를 맡았을 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2012년 방송된 JTBC 드라마 <빠담빠담> 이후 꼭 11년 만에 만난 정우성표 멜로이니 당연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또한 정우성은 청각장애인 화가 역을 맡아 수어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 먹먹한 사랑의 감정을 수어와 표정으로 잘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13년 전에 제가 만들고 싶었던 드라마였어요. 하지만 당시는 아직 이 소재를 드라마화하기에는 쉽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서 이런 장르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가져줘서 제작이 됐죠. 그러다보니 주인공의 나이가 자연스럽게 올라갔어요. 사실 내가 하지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이 작품과 인연을 맺을 때 정우성 배우이기 때문에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이 때문에) 해를 넘기면 더 큰일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정우성은 과감했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11년 드라마 판권을 샀지만 감성이 그대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작 드라마를 봤을 때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나오는데 가슴을 후벼 팠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을 고이 간직했던 터라 수년이 지난 후에도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사랑은 누구나 다 하잖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에서 조건과 환경이 된다면 (사랑을) 느끼죠. 원작은 30대 남성의 사랑 이야기인데, 제가 하니까 나이대를 40대 중반으로 올렸죠. 40대가 가져야 하는 사랑에 대한 대처, 생각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멜로 장르 속에서 40대 차진우가 할 수 있는 사랑, 아픔을 생각했어요. 또 나의 물리적 나이대를 인정하고 그것에 맞는 사랑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것과는 별개로) 요즘은 TV 화질이 너무 좋아서 ‘얼굴에 묻은 이 피로감은 뭐지?’ 싶더라고요. 촬영 중에 스태프들의 노고를 위로하려고 회식을 하는데 (이 상태로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5개월 동안 술을 끊었죠.”
정우성의 연기는 호평을 받았으나, 시청률은 화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드라마에 대한 뿌듯함이 더 크고, 드라마를 좋아해주는 시청자들의 호응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시대가 받아들여줘서 가능했어요. 13년 전 처음 제작이 논의될 땐 청각장애인인 차진우가 3회부터 말을 할 수 있게 바꾸자 해서 안 한다고 했거든요.”
마지막으로 정우성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어려워요. 뭔지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이대마다 느끼는 사랑의 달콤함이 다른데 늘 서툴러요. 지금도 사랑에 항상 서툰 것 같아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