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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를 대비한
고독력 키우기

은퇴 후 찾아오는 불안 중의 하나가 외로움이다. 홀로 사는 노후가 일반화되면서 그 어떤 노후 준비보다도 외로움에 빠지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사는 고독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고독력은 고독감 극복 능력이며, 혼자 있는 시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오히려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즐기는 삶의 태도이다. 노후가 행복해지는 고독력 키우기! 어떻게 하면 될까?

  손성동(한국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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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등 혼자 있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가르침에 익숙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고독을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상태’로 무섭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니 고독이라는 말에 좋은 의미를 덧붙이기가 쉽지 않다. 고독을 가난, 질병과 함께 노년의 3대 괴로움의 하나로 보는 것도 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고독’이란 말이 온통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된 멀리해야만 하는 단어일까? 그럼 요즘 산업 지형도까지 바꿀 정도로 넘쳐나는 홀로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들은 시대의 낙오자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인가?

혼자 있는 능력

정신분석학자인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 충동을 느낀다. 다른 이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이 그 한 가지고, 또 한 가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즉 사람은 본능적으로 관계 중심의 삶과 독자적 삶을 함께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홀로족은 관계 중심적 삶에 지친 심신을 독자적 삶, 즉 의도적 고독을 통해 활력을 얻고자 하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이제는 고독(solitude)을 외로움(loneliness)과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같은 책에서 스토는 또 이렇게 말한다. “뇌가 가장 좋은 상태로 기능하고 개인이 각자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 학습과 사고,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게 해주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의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내면의 자아와 조우하며 침묵과 명상의 나이테를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과 명상은 깊숙이 숨어 있던 나의 잠재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독을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까이해야 하는 까닭이다. 치열한 경쟁의 장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고독은 더욱 필요하다.

고독을 친구 삼을 이유는 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은퇴라는 정거장을 거치게 된다. 은퇴는 경제적 활동의 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함께했던 수많은 무리와의 이별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무리가 나를 버릴 수도, 나 스스로 무리를 떠날 수도 있다. 어떤 식이든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큰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무리와의 연결을 학수고대하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급기야는 광고나 스팸성 전화마저 반가워 기꺼이 통화버튼을 누르는 경우도 발생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의 노후생활에 연착륙하고, 평안하고 활력 있는 노후를 위해서는 은퇴 이전에 고독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고독력을 익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독력을 키우는 출발점은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점심을 혼자 먹는다거나, 한 시간 일찍 출근해 혼자 일하는 시간을 확보한다거나, 가끔 혼자서 공원을 산책해보거나, 정신없이 바쁠 때는 일부러 5분이라도 시간을 내 옥상이나 주변의 나무 밑에서 심호흡을 해보거나, 이조차 여의치 못할 때는 화장실에서 열을 식히는 방법 등을 통해 혼자 있는 자신의 모습과 친숙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가면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은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일이다. 혼밥을 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결코 혼자 있는 시간이 될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뭘 하면 좋을까? 혼자 있는 시간만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나치기만 했던 주변의 사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없다. 내면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면 주변의 사물을 먼저 관찰해보자. 관찰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얼핏 초록으로만 보이는 나뭇잎도 자세히 관찰하면 초록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눈에 들어온다. 손등의 핏줄처럼 나뭇잎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길도 보인다. 그 속에는 어떤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 관찰에 익숙해지면 이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레 무언의 대화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과 신선한 생각들을 휴대폰 메모 기능 등을 활용해 꼭 붙잡아두자. 세상은 달리 보이고,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어느덧 나의 인생은 숙성 김치처럼 익어갈 것이다.

고독에 어느 정도 친숙해지면 이제 조금 욕심을 부려보자. 고독은 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다. 고독에 욕심을 부린다고 타인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다. 외려 윈-윈의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은 강하고 혁신적이고 외롭지 않다.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고독열차 탑승을 주저하지 말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고독력 지수가 높다.

고독력 지수는 혼자의 시간을 외롭지 않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을 수치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고독력이 가장 낮은 수준을 1, 가장 높은 수준을 10이라고 해보자. 혼자 있으면 불안해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우면 고독력이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고 자꾸 기다려지며 충만한 마음이 들면 가장 높은 수준의 고독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에게 적합한 고독력 지수를 만들어보자. 이는 자신만의 고독력을 개발하는 또 다른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