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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이 지나가는 통로인 동맥과 정맥에 발생하는 질환에는 뇌동맥류, 흉부대동맥류, 복부대동맥류, 하지정맥류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초기 증상이 없으므로 질병에 대해 미리 숙지해두어야 한다.
글 박지영 감수 김도균(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참고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정맥학회, 대한혈관외과학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동맥과 정맥에 대하여
우리의 심장은 무의식중에도 하루 10만 번씩 운동하며 온몸에 혈액을 공급한다. 혈액은 심장을 중심으로 온몸을 순환하는데, 혈관은 이때 혈액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혈관은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나뉜다. 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깨끗한 혈액을 우리 몸 곳곳에 내보내는 통로이고, 정맥은 노폐물과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혈액을 수거해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통로이다. 즉 동맥과 정맥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통로이다. 반면, 모세혈관은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교차로다. 모세혈관에서는 혈액과 조직 사이에 산소, 이산화탄소, 영양분 및 기타 물질 등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동맥은 심장의 펌프 운동에 따라 혈류 속도가 초속 20~60cm로 빠르고 혈압이 높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동맥의 혈관벽은 정맥보다 두껍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탄력성이 좋다. 동맥은 정맥에 비해 피부 속 깊이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심장이 뛰는 속도로 박동하는 맥동성이 있어 우리 모두 동맥으로 혈압을 측정한다. 동맥관련 질환은 동맥경화에 따른 관상동맥협착증, 뇌혈관 질환, 콩팥혈관 질환, 말초혈관 질환 등이다.
정맥은 동맥보다 심장펌프운동의 영향을 덜 받는다. 비교적 압력이 낮고 혈류 속도가 느리기에 혈관벽 또한 얇고 탄력성이 낮다. 혈압이 낮은 정맥은 혈관 주사를 맞을 때, 수혈할 때 필요하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푸른빛 혈관은 모두 정맥이다. 그런데 정맥은 동맥에 없는 판막이 있다. 판막은 혈액의 역류를 막기 위한 문으로 심장에 4개, 팔과 다리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가 분포한다. 다리 정맥의 혈액은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올라가므로 역류 가능성이 무척 높다. 판막과 혈관벽이 건강하다면 역류가 일어나지 않지만 판막이 손상된 경우나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이 역류해 정맥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리가 붓고 저린
하지정맥류
하지정맥류는 다리 피부의 정맥이 확장되고 꼬불꼬불 비틀리면서 늘어나는 질환이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있는 피부 정맥이 혹처럼 튀어나온다고 해서 하지정맥류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하지정맥류는 정맥 내 존재하는 판막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혈액이 역류, 위로 올라가야 할 혈액이 다리로 몰리면서 종아리나 허벅지에 혈관이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하지정맥류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하지정맥류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17년 24만 723명이었던 환자가 2021년 37만 7,895명까지 증가했다. 2017년 대비 57% 늘어난 셈이다.
하지정맥류는 유전, 노화, 호르몬, 비만, 운동 부족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증상인 사례가 많아 정작 질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한혈관외과학회와 대한정맥학회가 발표한 하지정맥류 질환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10명 중 7명은 질환명만 알고 있으며, 응답자 1,000명 중 실제 환자에서 다리 혈관의 돌출 증상을 경험한 비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평소 다리에 무게감이 느껴지거나 저리는 등 체크리스트상의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하지정맥류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하지정맥류는 초음파 검사로 진단한다. 치료는 초기에는 하지 근력운동과 혈액순환개선제 등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고, 많이 진행했다면 병든 정맥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을 수 있다.
남성 난임의 원인 중
하나, 정계정맥류
정맥 질환은 다리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최근 남성의 가임을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질환이 있다. 바로 정계정맥류다. 정계정맥류는 음낭의 고환에서 나오는 정맥혈관이 확장돼 꼬불꼬불 엉키고 부풀어 오르는 질환을 말한다. 쉽게 말해 음낭의 혈관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음낭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정맥들이 비정상적으로 확장, 이로 인해 혈액 흐름이 정체돼 발생한다.
정계정맥류는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전체 남성의 10~15%에서 나타난다. 특히 난임 남성에서는 20~40%에서 발견돼 임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추정된다. 아직까지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계정맥류 환자가 치료한 뒤 임신에 성공하는 사례가 제법 보고되는 추세다.
정계정맥류도 하지정맥류처럼 초기에는 눈에 띄는 증상이 없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늘어진 혈관이 눈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고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불편감과 통증은 주요 증상 중 하나다. 양손을 고환에 댔을 때 핏줄이 만져지거나 온수 샤워 뒤 눈으로 볼때 고환의 좌우 크기가 다르고 음낭이 많이 처져 있으며 고환에 구불구불한 핏줄이 뚜렷하게 보인다면 정계정맥류를 의심해보는게 좋다.
정계정맥류는 초음파 검사로 진단한다. 치료는 크게 색전술이라는 시술과 절제술이라는 수술 2가지로 나뉜다. 정계정맥류를 예방하려면 평소 꽉 조이는 하의를 피하고 통풍이 잘되는 환경에서 하체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머릿속 시한폭탄
뇌동맥류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뇌혈관은 몸속 다른 혈관에 비해 혈관을 포장하는 근육층이 얇고 내층을 보호하는 탄성막에 결함이 잘 생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면 뇌동맥류가 되고, 뇌동맥류가 터지면 ‘뇌지주막하출혈’이 된다.
뇌동맥류 발병에는 ‘연령’이 무척 중요한 인자로 꼽힌다. 뇌동맥류는 보통 40세 이후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발병위험도가 1.56배 높으며, 정상 인구에 비해 고혈압 환자는 1.46배, 심장질환자는 2.08배, 가족력이 있으면 1.77배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뇌동맥류 발생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인구 10만 명당 52명에게서 나타나고, 한 해 5,300여 명이 뇌동맥류 파열로 병원을 찾는 것으로 집계됐다.
발생 원인은 대부분 혈역학적인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뇌동맥류는 뇌 내 동맥의 갈라진 부위에 생기는데, 이 부분의 혈관벽이 구조적으로 약한 부위가 되어 여기에 정상 혈류가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동맥류 발생에는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하며, 가장 잘 알려진 위험인자는 고혈압과 흡연이다.
뇌동맥류는 전조 증상이 없어 발병 전까지 환자가 질환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뇌동맥류 파열 환자 대부분은 혈관이 터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혈관이 터지는 순간,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듯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갑작스럽고 심각한 두통을 느낀다. 이때 뇌 속에 피가 퍼지면서 순간적으로 뇌압이 상승하는데, 이로 인해 급사할 확률이 10%에 가깝고 병원을 찾아도 총사망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출혈 정도에 따라 출혈이 약하면 두통을 느끼고,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진다.
뇌동맥류 진단은 뇌혈관 CT(컴퓨터단층촬영)와 뇌혈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이용해 10~20분 만에 가능하다. 최근에는 조기 검진으로 뇌동맥류가 파열되기 전 발견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 치료법은 수술이 유일하지만 무조건 당장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뇌동맥류 진단을 받으면 주치의와 상담해 뇌동맥류의 모양이나 위치, 크기, 상태에 따라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수술 시기를 결정한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30대 이후부터 꾸준히 혈관조영 CT를 이용해 뇌동맥류의 이상 여부를 사전에 파악하도록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복부대동맥류
혈관이 풍선처럼 늘어나는 동맥류가 심장으로부터 나온 복부대동맥에 생기면 복부대동맥류라고 한다. 한번 파열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질환으로 복부의 대동맥이 정상 크기보다 커져 꽈리처럼 늘어나 있는 상태다. 주요 위험 인자는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유전적 질환과 외상, 선천적 기형과 감염 등이다.
복부대동맥류는 혈관이 터지기 전까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복부 통증, 허리 통증을 동반하거나, 복부대동맥류 내에서 만들어진 혈전이 다리로 가는 혈관을 막는 색전증에 의해 하지통증, 냉감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 복부대동맥류가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복부대동맥류가 점점 커져서 파열하는 경우, 혈압 저하, 의식 소실 등 쇼크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데 생명이 위협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혈관이 계속 부풀다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터지는데 환자 50% 정도가 병원 도착 전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복부대동맥류는 ‘흉부대동맥류’보다 9배 더 잘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복부대동맥류의 진단은 대부분 초음파 또는 복부혈관 CT로 한다. 복부대동맥류는 복부대동맥류가 처음 발견됐을 경우, 크기와 증상 여부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수술 치료 방법은 개복수술(open repair)과 혈관 내 대동맥류 교정술(endovascular aneurysm repair)이 있다. 복부대동맥류 예방을 위해서는 꾸준한 유산소 운동으로 고지혈증,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의 치명률을 낮춰야 한다.
동맥류와 정맥류에
시행하는
인터벤션 색전술
인터벤션 색전술은 정맥류, 자궁근종, 간암, 뇌동맥류, 복부대동맥류 치료 등에 적용되는 시술법이다. 국소마취 후 혈관을 통해 가느다란 카테터를 삽입해 백금실과 경화제로 문제 혈관을 막는다. 혈관을 결찰하는 수술보다 간단하고 효과는 비슷하며 부작용이 더 적어 안전성과 효과를 모두 인정받은 치료법이다.
뇌동맥류 수술은 크게 2가지 방법으로 시행한다. 볼록한 혈관 부분을 집게로 집듯 묶어버리는 동맥류 결찰술과 동맥류 안으로 미세도관을 삽입한 후 이를 통하여 코일을 넣고 동맥류 속 혈류를 막는 뇌동맥류 색전술이다. 이 중 동맥류 결찰술을 주로 시행하는데, 미세현미경으로 동맥류의 목 부분을 결찰하는 방법이다.
뇌의 너무 깊은 곳에 있거나 위험한 구조물에 둘러싸여 있어 결찰술을 시행하기 어려울 때는 뇌동맥류 색전술을 시행한다. 동맥류결찰술이 머리를 절개해 동맥류를 겉에서 치료하는 방법이라면 색전술은 뇌혈관 내로 기구를 삽입해 뇌동맥류 안에서 치료한다. 치료 후에 합병증과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뇌동맥류 파열 여부에 따라 신경학적 상태가 좌우되는데 환자 혼수상태였는지 혹은 두통을 느끼고 의식이 있는 상태였는지에 따라 치료 예후에 많은 차이가 난다.
하지정맥류 의심 증상
하지정맥류의 증상이 다양한 만큼
아래 항목을 체크해보자.
□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쉽게 피로해지고 무겁게 느껴진다.
□ 종종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진통제를 복용한다.
□ 수면 중 다리 경련이 일어난다.
□ 오후나 저녁에 다리(주로 발목 부위)가 자주 붓는다.
□ 다리가 가렵고 터질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 하지정맥류 가족력이 있다.
□ 색소침착·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질환, 원인 모를 다리 통증, 다리에서의 열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