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얼굴이었다. ‘뽀블리’ 박보영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배우 박보영이 2018년 영화 <너의 결혼식> 이후 꼭 5년만에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박보영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그간 보여줬던 사랑스럽고 유쾌한 모습을 버리고 다른 톤의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고 있다.
글 남혜연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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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할 줄 아는 배우 박보영
영화 개봉 뒤 박보영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뽀블리의 반란’이다.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뒤로한 채 깊은 내면연기로 완벽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극 중 박보영은 주민 대표로 뽑힌 영탁(이병헌 분)과 함께 방범대 활동을 하는 602호 민성(박서준 분)의 아내 명화역을 맡았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지만, 전 명화가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일을 겪으면서 도덕적 잣대가 높아진 사람이죠. 연기하면서는 일상적이지만 다른 방향의, 혼자만의 신념을 끝까지 가져가는 캐릭터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뒀고요. 흔들리지 말자고 촬영 전부터 마음을 다잡았죠. 장르적인 부분에서도 차분하고 누르는 연기를 많이 고민했는데 다행히 감독님께서 ‘잘 잡아줬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민을 덜 수 있었어요.”
박보영은 2006년 데뷔한 17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면서도 본인의 연기에 박한 평가를 해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오랜 숙고 끝에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완벽한 연기 변신은 배우 박보영에게 연기의 폭을 넓혀준 동시에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사실 제가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요. SF도 안 해봤고 진한 멜로도 슬쩍슬쩍 발을 담가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고…. 너무 밝은 모습이 저의 강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해 한동안은 고민이 많았어요. 여러 순간을 지나고 살아가며 올해 나의 웃는 모습이 다르고, 내년에 나의 웃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지금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조급해하지 말고 한층 여유로운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려고 해요.(웃음)”
박보영이 이병헌을 만났을 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우 박보영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BH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긴 뒤 첫 작품이기도 하고 같은 소속사인 배우 이병헌과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보영이 먼저 출연 요청을 할 만큼 각별한 애정이 있다.
“소속사를 옮기고 대표님께서 제 취향을 잘 모르시니까 가지고 계신 모든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피드백해주길 원하셨죠. 그때 이걸 봤는데 보는 내내 이상한 갑갑함이 느껴졌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란 대사를 보고 한 대 맞은 기분인 거예요. 바로 명화를 제가 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다행히 캐스팅 전 단계라 줄을 설 수 있었고(웃음) 감사하게도 엄태화 감독님도 좋다고 해주셨죠.”
생애 첫 호흡을 맞춘 선배 이병헌의 연기력에 압도돼 슬럼프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병헌을 향한 감탄은 곧 박보영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나중에는 고민을 엄청 많이 했어요. 선배님 덕분에 일기장이 온통 나는 왜 이렇게 모자란 인간인가, 배우란 저런 사람이 배우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안구를 갈아 끼울 수 있나, 나는 예열이 필요한 사람인데 선배님은 예열도 필요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실까, 생각을 하다가 중간에 슬럼프가 왔어요.”
여기서 끝냈다면 배우 박보영이 아니다. 깊은 고민은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자양분이 됐다. 선배 이병헌은 배우 박보영에게 특별한 자극이자 힘이었다.
“‘난 이병헌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명제를 찾은 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죠. 스태프분들을 대하는 태도, 연기하는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한마디로 빈틈이 없으셨어요. 다양한 모습들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이유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소통할 줄 아는 배우 박보영,
따뜻한 위로를 건네다
플랫폼 규모가 커지면서 박보영 역시 이에 발맞춰 팬들을 만나고 있다.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 그는 네이버 V LIVE를 시작했다. 소속사 권유가 아닌 본인 의지였다. 또 이 플랫폼이 위버스로 인수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개설했다. 팬들의 니즈를 확실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는 선구안을 가진, 똑똑한 배우다. 최근에는 팬에게 보낸 따뜻한 위로도 화제가 됐다.
사연은 이렇다. 박보영의 한 팬이 공황장애가 생긴 이후 극장을 가지 못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못 보게 되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에 박보영은 “꼭꼭 약 챙겨 드세요! 꼭 나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셔야 해요. 왜 나에게 같은 마음도, 조급한 마음도 가지지 마세요”라며 “정말 꾸준히 약 먹고 치료하기로 약속해요. VOD가 언제 나올진 저도 잘 모르지만, 꼭 보시길 희망합니다”고 말했던 것. 여기에 차기작의 대사를 언급하며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교통사고 같은 거다!!’ 잊지 말기로 해”라며 팬을 위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박보영의 이 같은 행보는 오로지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이어지고 있다. 다작 하지 않는 배우기 때문에 팬들과의 소통공간을 통해서라도 솔직한 속내를 보이고 싶어서란다. 또 무대인사에서 받은 선물을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하는 것은 물론, 받은 편지를 손수 읽는 정성까지 보여 팬들 역시 이 시간을 함께 즐기고 있다. 많은 선물에 그는 “감사한 마음이지만, 나는 편지로도 너무 행복해. 알겠죠, 여러분?” 하며 사양한 일화 역시 유명하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해요.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소통은 앞으로도 쭉 계속될 거예요.”
‘뽀블리’ 감사한 별명,
올해 더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
박보영에게 가장 많이 쓰이는 애칭은 바로 뽀블리(박보영+러블리)다. 전작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고,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동안 외모도 한 몫을 했다. 과거 애칭이 부담스러워 이미지 탈피를 해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지만, 언젠가부터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애칭에 대한) 고민을 한 적도 있었어요. 상대방을 대할 때 특정 제스처나 말투를 안 쓰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감사한 줄 알아야지’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강점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는 게 감사한 일이고, 동안이라고 하지만 서른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내 눈에는 조금씩 성숙해져가는 과정이 보여요.”
신중하고 사려 깊다. 무엇보다 배우 박보영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해석할 줄 아는 영민함을 지녔다고 할까. 이에 그가 선택한 변화는 캐릭터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랬고, 11월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도 같은 연장선상이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데뷔 후 처음 도전하는 휴먼메디컬 장르이자 첫 OTT작품이다.
“배우로서 가장 큰 욕심은 ‘어떻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잘 찾는 것 같아요. 다양한 모습에 대한 욕심은 커지는데 그 욕심이 한쪽으로만 커지는 느낌도 있죠. ‘나는 동그랗게 커지고 싶다’가 궁극적인 목표예요. 지금은 조금 세모에서 동그랗게 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또 갑자기 완전 새로운 모습이 되기보다 변주를 통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젖어 들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박보영은 <건강보험> 독자들을 위한 말도 건넸다. “건강한 마음과 신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저는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노력해요. 운동을 끝냈을 때의 그 상쾌함이 짜릿하거든요. 또 하나, 지금의 날 인정하고 사랑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