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현업에 있을 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면 은퇴하고 나면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다. 누군가는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누리지 못한 채 죄책감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무리하게 은퇴생활을 누리려 과욕을 부린다. 이 모두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은퇴 후 시간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시간의 주인임을 인지하고 오롯이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글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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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1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 말버릇이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가질 않아 지겨워죽겠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전자는 주로 현업 종사자고, 후자는 주로 은퇴자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현업 종사자와 은퇴자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 통제의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현업 종사자의 시간을 통제하는 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다. 이에 비해 은퇴자는 스스로 시간을 통제해야 한다. 즉 은퇴한다는 것은 시간 수용자에서 시간 통제자로 신분을 전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간을 조직의 지시에 따라 보내는 삶을 청산하고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다니.
하지만 이런 자긍심은 착각임이 금방 드러나고 만다. 지금까지 시간의 주인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부모와 학교의 시간표에 나의 삶을 맞추고, 사회에 나와서는 조직의 시간표에 나의 일상을 맡긴다.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간이 온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니 낯설 수밖에. 은퇴 이전에 아무리 많은 명성과 돈을 얻었더라도 후반을 망치면 전체 인생이 일그러지고, 전반 인생이 지난했더라도 후반이 좋으면 그 인생은 빛나 보인다. 즉 인생의 승자는 은퇴 이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을 잘해내기
답은 바로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심리와 공간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심리와 공간을 지배하면 시간을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심리 지배를 통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여기서 심리를 지배한다는 것은 내면의 자아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을 뜻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고 항상 불안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이런 상황에서 헤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취미 찾기다. 이것이 어렵다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 이상의 재능을 타고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재능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면, 취미는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결국 둘은 이웃사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잘해내지 못하면 오래가기 힘들다. 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해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은퇴전문가들이 취미생활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먼저 어릴 때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누구든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특히 어떤 일을 함으로써 부모님으로부터 혼났던 일은 없었는지 떠올려보자. 아니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았던 일, 또는 무엇과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내가 잘하는 그 무엇을 알아내는 유용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취미를 찾았다면 실행에 옮기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의 주인이 되는 두 번째 방법을 잘 체득해야 한다.
다양한 동선을 개발
시간의 주인이 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공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공간의 지배자는 있을 곳과 가야 할 곳을 망설임 없이 결정 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아무리 좋은 취미도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동선을 몇 개 정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이쪽으로, 내일은 저쪽으로’처럼 몇 개의 동선을 개발하면 삶이 다양해지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같은 동선이라도 이동방법을 달리하거나 샛길 등을 이용하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게 사정상 여의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지역사회 무대에의 데뷔를 권하고 싶다. 내가 거주 중인 지역사회에는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각종 동호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민센터나 각종 단체 등에서도 은퇴자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지역사회 무대에 어렵지 않게 데뷔할 수 있다.
느슨하게 즐기라
마지막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느슨한 시간표’다. 시간적으로 타이트한 생활은 은퇴와 함께 던져버리고 느슨한 일상에서 느린 삶을 즐겨야 한다. 이는 은퇴자의 특권이자 시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타이트한 일상을 길게 유지할 만큼 은퇴자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요일 단위로 느슨한 시간표를 작성하고 이에 맞춰 일상을 영위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지배자가 되어 은퇴생활을 진두지휘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여행으로 은퇴생활을 즐길 만큼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시간의 지배자가 되는 길이야말로 행복한 은퇴생활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