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에게 한계란 없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세계관을 확장하듯 예능까지 접수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로 배우 인생 첫 코미디 도전을 신명 나게 마친 이선균은 tvN 예능프로그램 <아주 사적인 동남아>를 통해선 친근한 모습으로 인간미를 뿜어냈다. 지난 5월 개막한 칸 영화제에선 두 편의 주연작을 선보이며 <기생충> 이후 또다시 레드카펫 위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했다.
글 남혜연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데뷔 이후 최고의 파격
이선균 맞아?
두 눈을 의심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배우 이선균이 맞아?’ ‘비슷한 사람은 아닐까?’라고. 하지만,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와 깊은 눈빛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배우 이선균만의 매력이다.
영화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 분)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분)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 분)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더욱이 이선균은 극 중 장발에 콧수염을 붙인 채 등장, 기존 배우 이선균의 모습에 익숙했던 관객이라면 눈을 의심할 정도다. 또 이 작품은 이선균이 <기생충> 이후 처음으로 고른 작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전혀 다른 결의 장르와 캐릭터로 등장해 궁금증을 안겼는데, 이에 대해 이선균은 “큰 고민 안 했다. 솔직히 재밌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지만 이걸 어떻게 찍으려는지 궁금하긴 했어요. 솔직히 부정적인 그림이 컸어요. 너무 안 떠올랐거든요. 캐릭터를 갖고 있는 분들이 조나단의 옷을 입으면 훨씬 반전의 맛이 있을 것 같았죠. 궁금했어요. 거절을 하더라도 저한테 왜 준 건지 싶어서 미팅에 나갔어요. 1시간 미팅 후 미국에 갔어요. (이)하늬를 만났는데 긍정적으로 할 것처럼 하더라고요. 진짜 첫 마디가 ‘너 진짜 할 거야?’였죠. 하늬가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잖아요. 모든 것을 다 던지고 내놓고 하는 연기를 다양하게 하다 보니 하늬에 대한 믿음도 컸죠. 현장이 되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물론 고민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필모그래피를 성실하고 의미 있게 잘 쌓아온 배우였기에 작품을 까다롭고 진중하게 고른다. 그렇다고 이번 작품을 허투루 골랐다는 뜻은 아니지만, 자칫 배우 인생에 흑역사로 남을 캐릭터일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염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균이 <킬링 로맨스>를 선택한 건 캐릭터 자체를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연기를 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꼭 웃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어요. 초반의 당황스러운 캐릭터, 뜬금없는 장면의 전개가 있지만 오픈 마인드로 보시면 끝까지 재밌게 보실 것 같아요. 개연성을 가지고 가는 영화는 아니기에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분명 호불호가 있겠죠. 뒤늦게 개봉하지만 오히려 요즘 시대에 더 맞는 영화 같아요. 유튜브 콘텐츠들이 굉장히 이슈가 되고 인기를 끄는 시대가 왔잖아요. 10대와 20대가 거부감 없이 볼 것 같아요. 장벽만 넘어가면 마니아 층이 생길 것 같아요.”
예능에서 투닥거리고 요리도 하는
친근한 사람 이선균
이선균은 ‘배우’라는 이름의 무게를 넘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친근한 사람으로서 안방극장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타이틀로 등장하는 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가 보여 훈훈한 미소가 절로 나오게 된다. <아주 사적인 동남아>는 이선균, 장항준 감독과 배우 김도현, 김남희와 함께 한 동남아 여행기를 그렸다. 특히 예능과 거리가 멀었던 이선균의 등장에 화제가 됐다.
“예전에 배우들이 예능 출연을 주저한 건 개인적인 모습이 드러날까 봐였을 거예요. 개인기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최근 여행 예능은 편하게 출연자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잘 만들어주시더라고요. 방송 자체가 선물 같아요. 앨범을 받아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캄보디아에 이어 태국까지 연이어 방송이 됐다. 이선균은 깨알 같은 홍보도 잊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후 열흘 만에 태국으로 떠났다. 태국 이야기도 재밌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면서 “지난 여행을 통해 친한 관계가 돼서 태국은 더 재밌게 다녀왔다”며 활짝 웃었다.
이번 예능은 단순한 촬영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선물 같은 여행이었고,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왔단다. 더욱이 그 시기 <킬링 로맨스>의 배급이 잡혔던 터라 더욱 잊히지 않을 것 같단다.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웃긴 사람이 장항준, 이원석 감독이에요. 제작진이 제안해서 장항준 형과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됐는데, <리바운드>(장항준 감독)는 이미 배급이 결정된 상태여서 최대한 영화 홍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여행지인 태국에 갔을 때 갑자기 <킬링 로맨스> 배급이 잡힌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굉장한 경쟁 구도가 방송에서 펼쳐졌죠.(웃음) 극장도 그렇고 한국영화가 침체기를 겪다 보니 서로 응원했어요. 저도 아이들 데리고 <리바운드>를 보러 다녀왔어요.”
이선균은 또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아들을 통해 달라진 콘텐츠 소비 환경을 더욱 실감했다며 최근의 달라진 환경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TV를 잘 안 봐요. 유튜브만 보더라고요. 자연히 홍보 환경도 바뀌더라고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나간다고 했더니 ‘아빠가 어떻게 그런 데 나가냐’고 묻더라고요. 플랫폼 확장은 소비하는 입장에서 좋은 일이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인 극장에서 여행하는 기분, 영화를 보는 재미를 젊은 친구들이 느껴보길 바랍니다.”
‘칸’이 사랑하는 배우 이선균
또다시 레드카펫에 서다
이번이 세 번째 초대다. 이선균은 2014년 영화 <끝까지 간다>(감독 주간), 2019년 <기생충>(경쟁부문)에 이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김태곤 감독)와 <잠>(유재선 감독)이 각각 미드나잇 스크리닝과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4년 만에 칸을 다시 방문하게 됐다.
특히 올해는 두 편의 작품을 들고 가는 만큼 의미가 깊다. 먼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이 벌이는 극한의 사투를 다룬 재난영화로 이선균은 극 중 딸과 함께 재난상황을 맞닥뜨린 주인공을 연기한다. 도로 주변을 배회하며 일거리를 찾는 레커차 기사 역은 주지훈이 맡았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선균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편 현수로 분해, 정유미와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에 이어 네 번째 연기 호흡을 맞췄다.
“추운 겨울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열정을 담아 한마음 한뜻으로 촬영했던 작품을 칸 영화제에 선보이게 되어 너무나 뜻깊고 영광스러웠어요. 전 세계 관객들이 모쪼록 우리 영화를 재밌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칸 영화제에선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언론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외에도 영화 관계자들의 미팅도 이뤄진다. 이에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에도 배우들은 다양한 비공식 일정을 소화하는가 하면, 일부는 해변을 거닐거나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칸이다. 이선균은 아주 오랫동안 건강 관리 비결로 걷기를 해왔고, 영화 촬영 도중에도 시간이 나면 달리기나 산책을 즐기는 만큼 오랜만의 칸 일정에서 짬을 내 해변을 잠시 걸었다.
“운동하기를 워낙 좋아하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게 아이들과 함께 걷는 것이에요. 지방 촬영일정이 있을 때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잠시라도 걸으려고 해요. 배우는 감정 소비를 하기도 하지만, 몸을 쓰고 관리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직업이니까요. 잠깐이라도 해변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찾은 이곳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했고, 현재에 감사하며, 또 다른 미래를 그려봤어요. <건강보험> 독자 여러분들도 꼭 걷기를 해보셨으면 합니다. 몸과 마음 건강 모두 다 챙길 수 있는 운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