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좋습니다”
배우 최민식은 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것에 낯설어하지 않고 도전했다. 그 첫 시작은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결과는 성공적이다. 오랜 세월 이처럼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은 뭔지, 최민식에게 들어봤다.
글 남혜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새로운 시작이지만, 마음속 1순위는 영화
35년간 연기 외길 인생이었다. 1962년생, 만 60세인 최민식은 1989년 MBC <야망의 세월>로 데뷔해 수많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다. 특히 이번 작품은 1997년 MBC 아침드라마 <사랑과 이별>이후의 드라마 출연작인 만큼 많은 화제를 모았다. 어느 순간부터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는 배우라 아쉬웠는데, 이제는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영화·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에서도 만날 수 있어 화제가 됐다.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었지만, 역시나 최민식다운 답이 돌아왔다.
“<카지노>를 촬영하기 전에는 넷플릭스도 잘 안 봤죠. 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 현장에서 느낀 건데 역시 극장에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그래야 디테일도 보이고, 사운드도 그렇죠. 딱히 OTT라서 느껴지는 차이점은 없었어요. 스태프와의 호흡도 좋았고요.”
최민식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었을까. <카지노>는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대 시청 시간을 경신하는 것은 물론, OTT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디즈니+ 한국 TV쇼 부문 1위 기록, 대만 TV쇼 부문 1위에 올랐다. 특히 미국 포브스를 비롯하여 넥스트샤크, 뉴스위크 등의 외신들은 <카지노>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최민식을 극찬했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딱 하나 나름 자부한 게 있는데 ‘흉내 내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서양의 누아르를 머릿속에서 아예 지우자’고 했죠. 액션을 하더라도 우리 식으로 하고, 총을 쏴도 화려한 총격전 없이 순식간에 하자고 제안했어요. 외국 시청자분들이 이런 부분에서 리얼리티를 느끼고 색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배? 푸근하고 좋지 않았어요?
극 중 유독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최민식의 ‘배’였다. 너무 편해 보이기도 했고, ‘왜 몸 관리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품게도 했다. 다수의 인터뷰 중 유독 최민식의 배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그러나 35년 내공의 이 배우는 다소 불편했을 이 질문에 위트 있게 대답했다.
“배? 푸근하고 좋지 않았어요? 저도 사실 자꾸 (배가) 나오는데 괜찮나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웃음) 배우인데 외형적인 이미지에 ‘사람들이 놀라겠다’ 왜 이런 생각을 안 했겠어요.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차무식인데 괜찮지 않을까 싶었죠.”
너스레를 떨면서 이야기했지만, 연기를 할 때만큼은 완벽주의자인 최민식이 그럴 리가 없었다. 일부러 방치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평범한 모습으로는 최민식이 연기한 차무식을 설명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날렵하자니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냥 방치했어요.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수트빨 나오고 그런 멋있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차무식이란 캐릭터 자체가 평범한 사내잖아요. 인생이 꼬여가지만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 남편이란 평범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죠.”
무엇보다 최민식은 차무식이 단편적인 악인이 아니었기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 덕분에 많은 분량에도 마지막까지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처음에야 ‘다시는 못 하겠다’며 툴툴거렸지만 여전히 촬영장과 배우 및 스태프가 그립다고 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악인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사람이 100% 착하거나 나쁠 수 있을까요. 살면서 누구나 욕망이 있잖아요. 욕망을 좇던 인간이 느닷없이 죽어버리는 그 허무함, 그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더운 날씨 속에 정말 힘들었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촬영 현장이었고, 오랜만에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감사해요. 정신없이 지내다 이제야 <카지노>를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어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다음 작품은 로맨스물로 찍고 싶어
최민식은 <카지노> 제작발표 현장에서부터 ‘다신 안 해~’라는 말을 거듭 사용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했고 애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인터뷰 도중에도 ‘다신 안 해~’라는 말이 나왔지만, 귀여운 투정이었다.
<카지노>가 특히 타 작품과 달랐던 것은 61세의 최민식이 30대의 모습까지 연기했기 때문. 실제 화면에는 디에이징(de-aging) 기술로 한층 젊어진 얼굴이 등장한다. 이러한 질문이 나올 것을 미리 짐작한 듯 ‘30대 연기’라는 한 마디가 나오자마자 최민식은 두 손을 저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과학 기술의 힘을 믿었는데 다시는 안 하려고요. 10대와 20대 차무식을 연기한 이규형에게 토스할까 하다가 강 감독이 ‘형이 해야한다’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빨리 넘어가라’는 마음으로 했죠. 그런데 도저히 몸이 안 따라가더라고요. 사실 사람이란 게 외형적으로 보면 10~20년 차이가 크지만, 그 속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나만 해도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그래서 외형보다는 감정이나 정서 그리고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죠.”
그간 최민식의 연기를 보면 강렬한 캐릭터들이 겹쳐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때문에 다작을 해도 관객들의 뇌리에 각기 다르게 남겨진 게 아니었을까. 그런 가운데 그는 요즘 들어 캐릭터가 서로 죽이는 서사가 지겹다며 또 다른 역할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바로 멜로물이다.
“혼돈스러운 세상에 살면서 서로 보듬어주고 포용해주는, 정을 나누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가족 이야기처럼 따뜻한 거요. 이번에 <카지노>에서 20년 만에 만난 이혜영 씨하고 ‘우리 다음엔 로맨스로 만나자’고 했어요. 격정 멜로도 좋은데 주변에선 ‘걱정’ 멜로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좋은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겨요.”
조금 천천히, 여유롭게 사는 삶
배우 최민식이 오랜 세월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물론 좋아서 시작했고, 그만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독하게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캐릭터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최민식이 말하는 오랜 비결은 외면보다 내면을 가꾸는 데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건강한 배우 최민식이 존재한다.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좋죠. 하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내면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공연을 보고, 콘서트장에서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내면을 꽉 채우는 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야 좋은 감정과 정서가 발현될 수 있고, 건강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아닐까요.”
최근 달라진 일상도 있지만, 적응 중이다. 그는 2021년 소속사 계약 만료 후 매니저 없이 홀로 활동하고 있다. 먼 촬영장까지 직접 운전하고,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기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나고 오히려 좋아요. 처음 방송 시작했을 때도 매니저 없이 혼자 다녔거든요. 밤 운전할 때 피곤하고 길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눈치 안 보고 음악 크게 틀거나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죠. 가끔은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로맨스 영화를 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욕망만 있는 지금이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