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주변 지인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밀려든다. 언제까지 살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백세시대가 도래했지만 노후자금 주머니는 빈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후배들은 선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애쓰는 한편 그것이 녹록지 않음에 실망하기도 한다. 선배든 후배든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상황을 점검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다부진 자세가 필요하다.
글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소장
지금 붓는 연금은 노후 생활자금의 다른 말이다. 긴 노후의 평안함을 위해 젊은 시절의 달콤한 소비를 희생하며 장기간 붓는 게 바로 연금이다. 국민의 이런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3층 연금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3층 연금제도는 ‘국민연금(1층)-퇴직연금(2층)-개인연금(3층)’을 일컫는다. 하나의 연금에만 의존하기엔 우리의 노후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3개의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적연금이며,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적연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입의 강제성 측면에서는 국민연금은 의무, 퇴직연금은 준의무, 개인연금은 임의라는 차이가 난다. 하나씩 살펴보자.
가장 중추적인 역할, 국민연금
노후 생활자금 확보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국민연금이다. 3층 연금제도에서 1층의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은 국내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소득이 있는 자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공적연금이다. 국민연금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지름길은 일찍 가입하여 가입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소득이 적은 사람이 납입한 보험료 대비 더 많은 연금액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 생활자금을 착실히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이 있든 없든 젊었을 때부터 가입하는 것이다. 소득이 없는 젊은이들도 임의가입 형태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2층도 든든하게, 퇴직연금
2층은 가입이 준의무인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근로자의 재직 기간에 퇴직급여의 재원을 금융회사에 적립하고 이 재원을 회사 또는 근로자가 운용해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가입을 준의무라고 하는 이유는 퇴직연금이 법정 퇴직금제도를 기반으로 하여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에 불입되는 부담금은 퇴직금을 재원으로 하므로 근로자가 얻는 소득에서 지출되지 않는다. 이는 세후 소득에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대비 퇴직연금의 큰 장점이다. 노후연금을 부담 없이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가장 쉬운 연금제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수익률이다. 퇴직연금은 크게 나중에 받는 금액이 공식으로 정해져 있는 확정급여형(DB형)과 적립금 운용실적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구분된다. DB형에서 더 많은 금액을 받으려면 더 많은 월급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고, DC형에서 더 많은 노후소득을 확보하려면 운용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
3층은 개인이 가입여부와 가입금액을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개인연금이다. 개인연금은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에서 가입할 수 있으며, 최소 5년 이상 납입하고 만 55세 이후가 되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노후대비 금융상품이다. 흔히 말하는 연금저축이 대표적이다.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그 납입 금액에 대해 2023년부터 연 6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2022년까지 400만원이던 세액공제 한도를 600만 원까지 높인 것은 그만큼 노후대비가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국가에서도 잘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제혜택을 주는 금융상품이 희귀해진 요즘 연말정산을 13월의 월급날이 아닌 월급이 쪼그라드는 달로 받아들이는 급여생활자들이 많다. 이들에게 연금저축은 노후준비와 절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상품임이 분명하다. 다만, 연금저축을 중도 해지하게 되면 그간 세액공제를 받았던 납입금과 운용 수익에 대해 기타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연금탑이 높을수록 안정적인 노후 보장
노후 생활자금의 원천인 연금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3층 연금탑을 더욱 높이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었을 때는 소득이 적더라도 다른 활동을 통해 보충할 기회가 있지만, 노후에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소득을 확보하면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노후는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무대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왕성한 소득활동기에 조금 덜 쓰며 3층 연금탑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면 님이 되고,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며,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되는 게 인생사다. 긴 인생에서는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노후준비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의 작은 행동 하나가 긴 노후를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