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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IS STORY

건강검진 체험수기

일찍 발견하니
암도 불치병이 아니더라

2018 건강검진 체험수기
김○순
(대전)
최우수상

“위암 초기입니다.”
내시경을 마치고 마취에서 덜 깬 상태라 의사 말을 잘못 들은 건가, 내 귀를 의심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으셔야겠는데요.”
이어지는 말을 듣자니 이번에는 귀가 아니라 위장이 걱정되었다.
2년 전의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올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에 암이 생겼다니, 멍한 정신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위암이라고요?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요?”
놀란 내가 목청을 돋우자 의사는 위암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했다. 일찍 발견했으니 수술로 제거하기 쉽고 100% 완치가 가능하다고 말하며 내 손에 CD 하나를 쥐어줬다.
“대학병원에 가셔서 이 CD를 접수하세요. 담당의사가 보면 금방 알겁니다.”
건강검진 때문에 아침을 굶기도 했지만 뜻밖의 진단결과에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자 남편이 붙잡아주었다. 발걸음이 천근도 넘는 듯 무거웠고 어느새 울컥하여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남편이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니 뒤로 밀려나는 가로수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 나이 10살 안팎이었으니 5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는 늘 위가 아파 방에만 누워계셨다. 위암으로 진단을 받았으나 너무 늦게 발견하여 수술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있어도 치료를 할 수 없었으니 그냥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건강검진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이 시행되지 않아서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꽤나 큰돈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위암도 증상이 심해진 후 발견한 것이었으니 말기가 분명했을 것이다.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못했던 시절, 늦게 발견한 암은 곧 죽음을 뜻했다. 뒤늦게 발견한 암으로 건강보험이라는 의료혜택을 보지 못하고 죽음만 기다렸던 아버지는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래도 다행이에요. 2년에 한 번씩 검사해서 이렇게 초기에 발견했으니….”
조금 전 의사가 건넸던 위로의 말이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도 내 손을 꼭 쥐고 연신 괜찮다고 안심시켜주었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에는 건강보험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의료보험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모든 일이 전산으로 처리되면서 건강보험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지금처럼 2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이 실시되지 않았고, 공단에서 기초적인 건강검진을 도와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위암의 가족력이 염려되어 소화기관에 대한 건강검진은 꼭 따로 받았었다. 그렇게 건강에 관심을 두고 살았는데 위암이 생겼다니 가족력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남편은 그래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훌륭하기에 그 혜택을 본 것 아니냐고 위로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처럼 2년에 한번씩 건강 검진을 받게 하며 체계적으로 국민의 건강관리를 해주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 예전에는 1차 의료기관의 검진 결과를 대학병원에서 받지 않았는데...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검진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어.”
대학병원을 찾아가 1차 의료기관에서 받은 CD를 제출하고 나자, 남편은 지나간 우리의 불합리했던 의료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환자가 시간과 돈을 버려가며 다시 검진을 받던 예전의 의료시스템을 개선하여, 이제는 대학병원도 1차 의료기관에서 찍은 영상자료를 참고로 검진을 한다. 대학병원의 의사가 내 위장을 촬영한 CD속의 영상을 보면서 일찍부터 건강검진에 관심을 가진 나를 칭찬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그동안 우리 부부의 건강검진을 주관했던 1차 진료기관의 의사에게 믿음이 갔고, 고맙기까지 했다. 우리 부부는 홀수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는다. 건강검진을 할 때가 되면 여러 건강검진 센터에서 전화 혹은 엽서로 각자의 병원을 홍보한다. 나는 그럴 때면 마음이 흔들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남편은 곁눈질 없이 오로지 한 곳만을 고수했다.
“지난 차트도 그 의원에 있고 매년 우리부부를 추적, 관리할 수 있으니 하던 병원에서 해야지.

그렇게 남편의 뚝심으로 1차 검진기관에서 내 위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의 의사는 옛날 의사들처럼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마치 자신이 최고인 듯 배를 내밀며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환자에게 대뜸 반말을 하는 의사를 만나는 일이 예사였다.
그러나 나의 담당의사는 수술방법은 물론 과정과 후유증, 수술 후 조심할 일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세상이 변하니 의사도 변하고 있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난 지 어느덧 1년도 넘었다. 공단에서 의료비를 보조해주니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돈도 많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수술 후 변화과정을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내시경 검사를 제안했다.
“수술이 잘 됐고 상처도 잘 아물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 1년에 한 번은 꼭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합니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속설은 더 이상 맞지 않는 것 같다. 건강검진을 자주 하면서 일찍 발견한다면 이제 암도 불치병은 아닌 것이다.
수술 후 우리 집에는 평화가 찾아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우리 부부는 정년퇴직 후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 7월부터는 지역의료보험 대상자로서 별도의 의료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늘그막에 생긴다는 돈은 겨우 연금뿐인데 거기에서 15만 원을 떼 간다니 기가 막혔다. 당장 살림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정부를 향한 불만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상부상조하는 건강보험 제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를 달랬다.
“참아요. 당신도 위암을 수술하면서 건강보험의 혜택을 입었잖아. 그런데 건강보험제도를 탓하면 되겠어?”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이웃과 서로 돕자는 의미로 향약이라는 사회보장제도의 씨앗을 뿌렸다. 건강보험도 거기에서 태어난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보험료로 납입하는 돈이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 돈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씨앗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고맙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보험료를 내면서 선배들의 건강을 챙겨주고, 늙어서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로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그랬듯, 대개의 사람들은 보험료를 내는 일에 짜증을 내며 정부를 원망할 때가 있다. 이제는 전 국민 모두가, 불평없이, 서로를 위하여 건강보험료를 납부해 건강하게 100세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